98년... 27살의 나이로 결혼이라는걸 하게 되었던 내가

엄마랑 카다로그며 백화점이며 돌며 골랐던 나의 첫 냉장고는

아주 은은하게 나무결이 비치게 만든 문짝을 가진 일반형 냉장고 였다.

모든 냉장고들이 흰색 일색이던 그 시절에 그 문짝이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다른 냉장고 보다 조금 비쌌고 나는 형편이 넉넉한 신부가 아니었음에도 주저없이

그 냉장고를 골랐었다.

아주 연한 베이지 색이 감돌던...

그때 코딱지만한 낡은 신혼집을 허니랑 페인트칠 하며 어쩜 우리집이랑 색깔도 딱이라며

너무너무 사랑 했던 그 냉장고....

오늘 그 냉장고는 이제 떠나보낼 정리를 하며

문짝이며 옆면이며 붙여 두었던 사진이며 자석들을 떼어내고...

괜스럽게 걸레로 한번씩 문질러 보며

바보처럼 냉장고에게 말을 걸게 된다.

냉장고야....미안하다..

더 오래오래 아끼며 사용해주지 못하고 고작 10년만에 너를 떠나보내게 되어 미안하다..

정이 많은 나는 물건 하나 떠나보내기가 이렇게 어렵다.

새로운것을 들인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지만

나의 신혼생활 10년을 지켜준 냉장고 이기에...

크나 작으나 할것없이... 그래도 한번도 크게 고장 나서 속썩인적 없고

어디 하나 모나게 찌그러진곳도 없는 내 냉장고....

이녀석도 새로 신혼집에 들일때... 얼마나 가슴 뛰어하고...

그 새 냄새 가득하던 냉장실이며 냉동실을 들여다보며 좋아라 했었던가...

문득 너무 오래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것이...

왜 갑자기 이렇게 센치해지는건지...나도 모르겠다.

요리에 욕심이 많다보니 식재료에 욕심이 많고...그래서 온갖 소스며 저장식품이며

냉장고 가득가득 넣어 두고 하루에도 몇번씩 문을 열고 닫으며

느껴오던 냉장고 인데...

이젠..내일이면 고물 신세가 되어 어느곳엔가 버려질 생각을 하니 참 마음이 좋지 않다..

새 물건 들이고 나면 이제 금새 잊어 버리겠지...

내 결혼생활 처음을 함께 지켜오던 냉장고가 어떤 녀석인지도...

미안하다.. 나도 한 2-3년은 더 쓰고 싶었어...

그런데 니가 전기를 너무 많이 먹잖니...

이제 늙었다고 그르렁 거리며 계속 모터를 돌리잖니...

그동안 정말 수고 했어... 잊지 않을께...

너의 연한 베이지색...나무무늬가 보이던 문짝도....

너의 차가운 가슴도...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도...

이제 푹 쉬어라... 그동안 정말 수고 했어... 정말이야..정말 고마왔어...

내 첫책은 너랑 함께 준비 했지... 블로그 곳곳에 정리 하며 남겨 두었던 너의 사진들..

지우지 않고 가끔 꺼내어 보며 널 생각 할께...

고마웠다... 정말...

해야할일 산더미 인데

괜히 마음이 센치해서...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ㅡ.ㅡ

물건에도 분명 정이 든다...

난 그녀석을 좋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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